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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여행기 16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여행 이야기(해외) 2024. 7. 23. 13:26
도시 전체가 '지붕없는 박물관'이란 부하라는
태생적으로 지독한 이슬람의 도시란 것을 보여준다.
부하라(Bukhara)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이란 뜻이다
도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칼란 미나렛과 칼란 모스크는
이슬람의 도시 부하라의 '상징'인 동시에 '전설'이 되어 버렸다.
어젯밤 너무도 늦게 들어와
쓰러지기 바빴던 아시아 호텔은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유적지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살살 걸어 산책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
성곽 부근의 시장길을 가로질러 가면
바로 아르크 성 입구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부하라는 도시 전체가 지붕없는 박물관이란 말이
자꾸 걷다보면 자연스레 느껴진다.
그래도 이동거리가 많아, 버스가 왔다.
아침 먹고, 버스에 올라타니
부하라의 현지 가이드, 늘씬한 미인에
한국어가 제법 유창하다.
우즈베키스탄에 오면, 김태희가 밭을 갈고
이영애가 식당에서 서빙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꼭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미인들이 정말 많았다~~ㅎㅎ
부하라의 상징인 '아르크 성'이다
사마르칸트의 상징이 '레기스탄'이라면
부하라의 상징은 '아르크 성'과 '칼란 미나렛'이다.
즉, 사마르칸트가 귀족 중심의 학문과 종교의 도시라면
부하라는 실크로드의 등대와 같은 도시였고
웅장한 성과, 고색창연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서민 중심의 도시라고 하겠다.
아르크 성은 크기가 4헥타르
즉 12,000평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다
BC 3~4세기에 지어졌으며
성안에 3,000명 정도의 상주 인구가 있었다고 한다.
거대한 요새이자, 부하라 지배자들의 거주지였으며
왕궁, 사원, 조폐소, 공장, 무기고, 수용소, 창고, 마굿간...
등등을 갖춘 곳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성 입구에는 낙타를 세워놓고
관광용으로 태워주거나
사진용으로 치장을 해둔 것을 보면
여기가 사막과 가까운 곳이란 느낌이 든다.
잠시 나무 그늘에 모여 설명을 듣는데,
사마르칸트나 부하라에는 꽃을 유난히 곱게 피운
자귀나무가 많았던 것도 인상에 남았다.
성문을 통과해 올라가면,
양쪽으로 유리벽 안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왼쪽 벽의 일부는 작은 방들로 나뉘어졌는데
한때는 감옥으로 사용한 곳이라 한다.
성의 축약도인데, 소련의 폭격으로 지금은
3/4이 파괴되고, 그나마 남아있는 부분은 1/4 정도라고 한다.
아르크 성의 현재와 과거의 사진인데
아랫쪽 예전의 사진에 보면
성 앞에서 시장이 열렸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이 부하라의 서민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가 첫번째 만난 사원~!
기둥의 문양이 특이하고
기둥 장식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안으로 들어가 천정 중앙을 올려다보면
화려한 보석과 유리들을 박아 장식해두었는데
반사되는 빛으로 경전을 읽었다고 한다.
주춧돌과 나무기둥을 연결하는 부분은
낙타털을 물에 적셔 틈을 메워
기둥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것을 방지했다는데
쪼개진 나무 틈새로 실제 낙타털이 보였다.
메카 방향으로 만들어진 기도실~!
섬세하게 그려진 나뭇잎과 꽃들의 색감과 모습이 이채롭다
미니 코란을 넣어 휴대할 수 있게 만든
아주 작고 고급스런 휴대용 코란 상자들
다리가 길어 성큼성큼 빨리도 걷던
가이드를 따라 다시 빠르게 이동하면
왕궁 안에 남아있는 시설들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고,
다 둘러볼 수 없으니, 중요한 곳만 보기로 한다.
예전에 왕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장소인데
지금은 상인들의 카페트만 두루 걸려 있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과거의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기도 하다.
예전엔 궁안에 50마리가 넘는 공작새를 키웠다고 하는데
왕이 공작새를 너무 좋아해서란다
그래서 부하라에서만 공작새 가위를 판매한다
성을 지키는 사자상인데
오른쪽은 원래 있던 것이고
왼쪽 것은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라 색이 다르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3/4 크기의 왕궁터
원래 있었던 것들은 흔적도 없어진
모래와 자갈만 남은 땅을 보노라니
권력의 무상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왕궁터의 끝에서 바라본
칼란 미나렛과 칼란 모스크가 보인다
다시 성문으로 내려가서
날이 뜨겁지만, 걸어서 저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허물어지다 남은 건물 안으로
살그머니 내려가 보았다.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거주지로 보이는데
건물의 뼈대만 남아있는 상태지만
아주 견고하게 지어진 느낌이다.
여긴 여인들의 공동 목욕터라고 하는데
야외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관찰해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곳이었단다.
특히 결혼을 앞둔 여인은
반드시 여기에서 목욕을 하면서
몸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성벽을 쌓아올릴 때, 중간중간 나무를 넣었는데
벽돌은 삭아 무너져도
이 나무는 썩지도 않고 남았다는데
그 나무가 놀랍게도 뽕나무다
오랜 세월을 품고도
반질거리는 손때와 함께
단단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문들도 모두 뽕나무로 만들었다니
나는 새삼 여기에서 뽕나무의 놀라운 능력을 알았다.
성문을 나오기 전에, 잠시 쉬는 곳에
수제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인
동판에 세밀한 조각을 하고 있는 어린 장인,
그리고 흙을 구워 만들었다는
오카리나 같은 전통악기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작고 이쁜 것이 소리도 아름다워
선물용으로 2개를 구입했다.
팬플릇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더니
특이한 모양이라고 좋아하셨다.
성 바깥으로 나와, 땡뼡을 견디며 한참을 걸었다.
오늘 한낮의 온도가 32도라는데
햇살이 너무도 강렬해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지만
나무 그늘에만 들어서면 금방 시원해졌다
아르크 고성은 780여m나 이어지는
사암으로 된 흙벽이 웅장하면서도 견고하게 보인다
그러나, 몽골과 투르크족의 숱한 침략을 받으며
붕괴와 재건이 반복된 세월을 견디며 지금까지 이어진다.
중앙에 우뚝 솟은 칼란 미나렛~!
높이 46m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높은 첨탑으로
실크로드의 등대 역할을 했다
먼 사막길을 걸어오다, 이 첨탑이 보이면
'부하라에 다 왔구나'라고 생각했었고,
밤엔 16개의 아치형 창문 안에 불을 피워놓아
멀리에서도 볼 수 있는 사막의 등대였던 탑이다.
오른쪽 건물은 '칼란 모스크'이고
한번에 10,000명이 기도할 수 있는 크기다
왼쪽은 '미르 이 아랍 마드라사'로 신학교 건물이다.
칼란 미나렛이 징기스칸 침략 때 파괴되지 않고
여태까지 잘 남아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징기스칸이 미나렛 앞에 와서 꼭대기를 올려다보다
너무도 높아서 그만 모자가 땅에 떨어졌다
모자를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다 보니 절하는 모양새가 되었단다
그래서 이 탑은 파괴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ㅎㅎ
칼란 미나렛은 완공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초창기에는 높이 올리기만 하면, 무너져서
몇 번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미나렛을 완공한 기술자는
처음 기단을 만들어놓고 사라져서
2년간을 나타나지 않았단다
2년간 완전히 기단이 단단하게 굳은 다음에야
차분차분 나머지 탑신을 쌓아올려
비로소 완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앞에 무너진 탑을 만든 이들은 모두 처형되었고,
탑을 완성한 분의 무덤이 탑 뒷쪽에 있다
기단의 아랫쪽을 자세히 보면
크기와 튼튼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칼란 미나렛의 용도는 크게 4가지
1. 실크로드의 등대 역할
2. 적의 침입 방어
3. 아잔(이슬람 교도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
4, 처형장(던지거나 밀어서 죽임)
미나렛의 왼쪽에 있는 마드라사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통로가 엄청나게 길다
입구를 들어서면 눈에 딱 뜨이는
엄청나게 거대한 뽕나무 한 그루
실크로드 위의 뽕나무들은
잎사귀 크기부터 다르고,
용도 또한 놀랍도록 다양했다
뽕나무로 건축을 하고(내가 아는 뽕나무는 결이 무른데?)
뽕나무를 삶아 종이를 만들고(닥나무가 아닌 뽕나무)
뽕나무로 그릇을 만들고
심지어 옷까지 지어 입는다
엄청나게 거대한 마드라사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멀리 정면에 보이는 것이~~
중앙의 황토색 돔 모양의 건물인데
징기스칸 침략 때
만 명 이상의 주민들을 몰살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 건물이다.
징기스칸이 짧은 시간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3대 조건
1. 말을 타고 달려 단시간에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2. 육포를 말려 말 안장에 넣어다니며 삶아 먹었기에
대량의 군량이 필요없었다.
3. 항복하지 않으면 여자와 아이까지 몰살시키는 잔인함
마드라사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기둥들과 아치들도 멋스럽지만
지금은 보수중인 것 같았다.
기도실은, 푸른 평화의 색으로 안정감있게 만들어 두었다.
마드라사를 나와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둘러보다 보면,
부하라가 왜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하는지를
바로 알게된다.
부하라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적 안에서 공연도 하고,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으로도 활용한다
전통기술을 재현하는 공방도 운영하고
관광객들이 전통음식으로 식사도 할 수 있다.
여행객들을 유적의 공간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어
여행의 몰입감과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정말 묘한 매력을 가진 도시다.
다들 너무 땀을 많이 흘려
잠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씩 마시며 쉬려고
미나렛 건너편의 카레로 올라왔다.
여기는 카페에 창문이 없고, 발코니처럼 트인 공간인데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으니,
천정에서 수증기 같은 찬안개가 계속 품어져 나와
시원한 느낌을 주는 천연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ㅎㅎ
모두 흩어져서 잠시 쇼핑의 자유를 즐기고,
호텔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땡볕 아래서, 공연 리허설 중인 청년들의 모습이
젊은이들의 특권처럼 보였다.
부하라에서만 제작 판매한다는
공작새 가위를 구입하고
가위랑 칼을 직접 만드는 장인과 함께 사진 한 장,
(부하라의 공작새 가위는 여기에서만 판매하니 꼭 사야한다)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가격을 비교하자면
사마트칸트보단 저렴하고도 물건이 좋았다.
다음에 우즈베키스탄을 가시거던 기념품이나 선물은
사마르칸트보단 부하라에서 꼭 구입하시길~~ㅋㅋ
오늘 점심이 마련된 레스토랑
내부가 엄청나게 넓다
양 등갈비 구이가 나오고,
메인요리 소갈비탕(너무 멀건)
고기말이 삼사(일종의 만두)와 샐러드
그리고 동글동글 이쁜 밥이 나왔다
밥과 만두, 샐러드만 먹어도 배부르게 잘 먹고,
부하라 기차역에서,
다시 초고속 열차 '아프로시압'을 타고,
4시간 10분을 달려 타슈켄트로 돌아간다.
부하라에서 1박을 하며
더 많은 곳을 느끼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차창 밖의 풍경은 올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고
구경하다 잠이 들어 편하게 잘 자고,
저녁 무렵에 타슈켄트에 도착,
역사를 빠져 나오니,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퇴근시간에 맞물려 정체가 심각하던 거리를 달려,
오늘 저녁은 타슈켄트에서 가장 성공한
고려인 식당 '청송'에서 먹는다.
별실에 우리 일행들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고
메뉴는 갈비찜과 김치, 무청 시래기 된장국인데
김치도 맛이 넘 없었고
무청 시래기 찌꺼기만 넣은 것 같은
너무도 멀건 국이 숟가락을 놓게 만들었다.
여기서는 김치나 다른 반찬들도
모두 메뉴로 계산이 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처럼 그냥 주지 않는다
가격도 엄청 비싼데, 맛이 너무 없다~~ㅠㅠ
모든 것이 괜찮은 하루였는데
고려인 식당에 와서 그만 기분이 상했다
그냥 내가 와서 확~~ 한국식당 차려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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