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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여행기 14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1>여행 이야기(해외) 2024. 7. 15. 15:15
오늘은 여행 중에 젤 빡빡하고 힘든 여정이 기다린다
이른 호텔 조식을 챙겨 먹고,
7시 30분 전용버스 타고 출발
사마르칸트행 초고속 열차를 타러 간다.
캐리어는 호텔에 맡겨두고
이틀간 지낼 짐만 간단히 챙겨 나왔다.
타슈켄트 역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약 2시간 10분을 달려가는
초고속 열차 '아프로시압'
8시 30분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열차내부는 널찍하니 좋았고
충전은 가능하나, 와이파이는 안된다.
중간에 빵이랑 커피 한 잔이 포함된 가격이라
아침 못 먹은 분들은 허기를 면할 수 있다.
사마르칸트에 도착해 역사를 쳐다보니
우즈베기스탄의 국조 백학이 기둥 윗쪽으로 그려져 있다.
사마트칸트 역을 빠져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오른쪽 끝) 딱 10시 41분
마침내, 오랫동안 기대했던 머나먼 곳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 '사마르칸트'로 왔다.
사마르칸트 역앞에 마련된 버스에 올라타니
사마르칸트 현지 가이드 '무하마드 존'이 인사를 건넨다
잘 생긴 핸섬보이지만, 한국어가 그리 유창하지 못했다.
버스타고 지나가다 언뜻 '아미르 티무르' 의 동상이 보인다
사실 사마르칸트는 '아미르 티무르'를 빼면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ㅎㅎ
맨 처음 도착한 '구르 아미르 영묘' 정문~!
티므르 왕 일가의 묘지인데
첫인상은 화려하기 그지없어
인도의 '타즈마할'을 떠올린다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푸른색 문양의 타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아치형으로 좁혀져 들어가는 부분의 벌집문양은
너무도 섬세하고 아름다워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페르시아에서 건축가들을 불러다 만들었기에
페르시아 건축양식과 유사한 분위기를 느끼게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중앙에 영묘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이 있고
왼쪽의 작은 가게들은 사마르칸트의 정교한 수제 접시들과
색색의 고운 실크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무너지고 터만 남은 부분도 있는데
재건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영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딱 눈에 뜨이는
아미르 티무르왕의 초상화와 영묘의 모형~!
초상화 안의 매서운 눈을 가진 아미르 티무르는 사실
그의 핏줄이 몽골계인지, 중국계인지
혹은 중앙아시아계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라는데
셋째 아들의 후손이, 인도의 왕족이 되어
그 유명한 샤자한 왕이, 후손의 한 명이라한다.
나중에 나오는 길에, 접시를 사기 위해 들런 지하 상점에서
주인이 비밀스레 간직하고 있던 초상화를 보여주는데
그게 진품이라고 절대 사진찍지 말라고 강조해서 사진은 없지만
그 초상화를 보는 순간, 나는 아미르 티무르가 몽골계라고 확신했다.
아미르 티무르 왕의 거대한 제국이 초록색 부분인데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을 멸망시키고
지금의 터키와 동유럽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영묘의 중앙 천정 돔은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는데,
실제로 엄청난 황금을 사용했다고 한다.
황금색과 신비한 푸른색의 조화로움이 취해있다가
모두 천정을 배경으로 사진놀이~!
영묘와 똑같이 만든 모형이고, 실제 묘는 지하 5m 아래에 있다
중앙에 까만 관이 아미르 티무르 왕
왼쪽으로 두 관은 셋째, 넷째 아들
오른쪽은 27세로 전사한 손자 '무함마드 술탄'
아랫쪽은 울르그 벡(천문학자이자 왕)
윗쪽은 왕의 영적인 스승 '미르 사이드 바라카'
아미르 왕이 가장 사랑했고, 왕위를 계승하려 했던 손자
'무함마드 술탄'이 1404년 오트라르 원정에서 전사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영묘를 건축했는데,
다음 해인 1405년, 중국 원정 중에 자신도 병사해서
이 곳에 함께 묻히게 되었다.
지하에 있는 실제 묘의 사진~!
앞에서 두번째, 아름답고 단단한
연옥으로 덮은 관이 아미르 티무르의 관이다.
뒷문으로 나오면 앞쪽에 지하로 연결되는 상점들이 있었고
가운데 상점의 주인이 아주 놀라운 사진이 있다고
들어와보라고 손짓을 과장스레 했다.
하도 '판타스틱'하다고 해서 들어가 본 것이 바로
아주 오래된 초상화였는데 '아미르 티무르'였다.
바로 그가 몽골계라는 강한 확신을 하게 만든 그 초상화는
절대로 촬영금지라 머리 속에만 담아왔다.
그리고 그의 가게에 있던 접시 두 개
아주 섬세한 문양을 손으로 일일이 그려 만든
사마르칸트의 수제 접시 두개를
깎고 또 깎아서 100불에 구입했다.
오른쪽 푸른 접시 까만 부분에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집에 와서도 이 접시는 참 잘 샀다는 생각이다~~ㅎㅎ
두번째 코스 '레기스탄 광장'
사마르칸트의 상징적 건물이다.
사마르칸트는 왕족과 귀족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였다
페르시아어로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란 뜻이다
티무르 왕이 이 도시를 건설했던 당시에는 상업, 무역의 중심지였으나
울르그 벡의 시대에 와서, 왼쪽의 마드라사를 짓고
이슬람식 학문과 종교의 신성한 장소로 바뀌었다.
기념 사진 한 장~!
레기스탄 광장은 세 개의 마드라사(신학교)가 자리한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실크로드 시절엔 '낙타사라이'였다가
17세기 중반에 신학교가 된 티라카리 마드라사
왼쪽이 제일 첨 만들어진 울르그 벡 마드라사(15세기)
오른쪽이 셰르도르 마드라사 겸 모스크(17세기 초반)
왼쪽의 울르그 벡 마드라사로 들어가기 전
무하마드로부터 설명부터 듣는다.
배경이 아름다워, 웨딩촬영 온 신혼부부들이
가끔씩 보였는데, 웨딩촬영의 명소라고 한다.
입장하면, 1층의 작은 방들은
현재 모두 상가로 활용되고 있는데,
기념품과 실크제품들, 접시들이 많다
특이한 기둥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무하마드는
아직 서투른 가이드란 것을 느끼게 한다.
짧은 시간에, 한국에서 온 관광객에게 필요한
중요한 정보만 전달하면 되는데 말이다.
천문학자이자, 티무르 왕의 손자였던 울르그 벡이
천문학을 연구하는 모형이 진지하게 느껴진다.
15세기에 태양과 달, 행성의 궤도를 관찰하여
1,018개의 별자리 천문도를 만들었고,
티무르 제국의 르네상스를 이룬 학자이자 왕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을 원치 않았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아들의 반란을 부추겨 왕좌에서 밀려났고
멀리 유배되는 과정에서 암살되고 말았다.
그가 만든 천문도~!
이것을 바탕으로 조선 세종 시기에 칠정산내외편이 발간되었다.
기록에는 장영실을 중국으로 보내어
천문과 지리에 대한 공부를 했다지만,
실제로는 중앙아시아까지 왔던 것이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울르그 벡의 이론이 유럽으로도 전달되었고
독일의 어느 과학전문지에 실렸다니
세계 천문학의 시조가 바로 울르그 벡이 아니었나 싶었다.
세르도르 마드라사 아치 위에 새겨진 문양인데
세르도르가 '사자'라는 뜻이다.
동물이나 우상을 금지시키는 이슬람법을 어기면서까지
왕이 이런 문양을 새긴 것은
이슬람법 위에 왕권이 있음을 과시하는 의지가 아니었다 싶다
사자 위에 왕의 얼굴, 그리고 태양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자처럼 용맹하고 태양처럼 빛나는 왕이란 뜻이 아닐까?ㅋㅋ
광장을 걸어 가운데 티라카리 마드라사로 들어간다.
화려한 황금장식으로 정밀하게 문양을 새진
메카 방향의 기도실~!
눈부신 천정돔 문양들,
기도실 양옆으로 이어진 공간들은
거의 모두 기념품점들이다.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던 코란 구절들~!
오른쪽의 세르도르 마드라사
내부 구조는 거의 비슷해서 이 곳은 설명 생략인데
아치 윗쪽의 그림이 바로
조금 전에 설명했던 사자문양이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걸어다니는 것이 힘들 정도였는데
고운 드레스 입은 아이들은 참 이쁘다
여기서도 웨딩촬영 중인 신혼부부를 보았고,
여기에서 핀 무궁화들은
정말 꽃들이 활짝 웃는 것처럼 생기있게 피었다.
한국의 무궁화들 보다 훨씬 곱다는 생각이 들어
자주 눈길을 주었던 무궁화 나무들
오늘 점심이 예약된 식당
자리 세팅해두었고,
에피타이즈로 과일이 미리 나와 있었다.
기본 빵과 샐러드가 나오고,
오늘 점심은, 뽈롭(기름밥)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주식이라 볼 수 있는 것으로
양고기 기름을 듬뿍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위에 고기 한 덩이씩과 볶은 노랑당근을 올려준다.
근데 맛만 보고 먹지 않으려고 했던 뽈롭이
양고기 냄새도 안 나고, 깔끔하게 맛이 좋아
절반쯤을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ㅎㅎ
내 좌석 바로 뒤에 청년 넷이 뽈롭을 시켜 먹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보니, 커다란 쟁반에
산더미 같은 뽈롭을 쌓아놓고 넷이 앉아 있어서
이 많은 볶음밥과 고기를 이 청년들이 다 먹는가 싶어서
이게 뽈롭이냐고 물었더니,
한 청년이 한국어로 답을 한다.
자기는 한국의 인천에 와서 2년동안 한국어를 배웠단다
그때 사귄 여자친구랑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고
한국을 엄청 좋아해서,
다시 한국으로 가고 싶단다.
그래서 그 여자친구랑 잘 사귀어서
결혼해서 한국으로 오라고 했더니,
잠시 처연한 표정을 짓더니, '인샬라'라고 했다
나는 당신을 축복하고 응원한다고
꼭 소망을 이루길 바란다고 했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호의적이다
청년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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