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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카사스 여행기 9 - (조지아) 트빌리시 시티 투어 1
    여행 이야기(해외) 2019. 7. 1. 17:22


    어제 먼 길 달려온다고 힘이 들었고,

    밤늦게까니 만찬을 즐기느라고 다들 피곤했기에

    오늘의 일정은 느지막히 시작된다.


    오전 11시 되어서야 모두들 호텔 로비로 모였다.

    호텔 앞의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바로 '자유의 광장'과 연결이 되는 번화가라

    트빌리시 시내를 둘러보기엔 안성마춤이다.


    우선 자유의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조지아의 국기를 드높이 휘날리고 있는

    격식있게 생긴 이 건물은 국회의사당이다.



    광장 한 켠에 자리하는 '그라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동물로

    하늘을 날면서 입으로 독을 품어낸다.



    헌 책들을 팔고 있는 노점상에 눈길이 가지만,

    읽을 수가 없어 사는 일은 안 되겠고...ㅎㅎ



    버스가 달리고, 사람들이 걷는 도로 아래쪽으로

    공산당 시절 이전인 1878년 제정러시아 시대에 만들어진

    지하도로가 보인다.


    트빌리시는 1,5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다

    5세기에 수도가 된 뒤, 지금까지 계속 발전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천 년의 세월을 모두 감싸안고

    현재의 새로움들을 덧칠하며 살아있는 도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런 곳이다.



    건너편에 보이는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푸쉬킨 동상~!

    그 유명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국민 시인이다.



    조지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향신료가 첨가된 소금들~!


    1컵에 각 2라리(900원 정도)였는데,

    일행들따라 빨리 걷느라 사질 못했다.

    나중에 이걸 골고루 사다 음식에 넣어 볼건데...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이미 늦었다~~ㅋㅋㅋ



    오래된 성곽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성곽을 끼고 지어진 이런 집들은

    거의 다 예전엔 유곽이었단다.



    쉬엄쉬엄 구경하며 걸어서

    드디어 트빌리시의 명물 시계탑 앞에 왔다.


    12시가 되면 맨 위의 문이 열리고

    가브리엔 천사가 나와 종을 12번 친다.


    그리고나면 시계 아래쪽의 문이 열리고

    사람의 일생을 나타내는 인형들이 차례로 지나간다.


    10분 전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뒷쪽의 화단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는데

    나무 그늘이고 높이도 있어 딱 좋았다.

    5월 중순의 정오 햇살은 제법 뜨거웠다.





    천사가 나와, 12번의 종을 치는 모습~!






    시계 아래쪽의 문이 열리고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중요한 일들을 겪으면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인간사를 표현한 인형들이

    차례로 지나간다.



    시계탑은 2010년에 만든 레조 가브리아제의 작품이다.

    삐딱빼딱하게 만든 것 자체도 의미를 넣었고

    전체적으로 아주 섬세하게 구상하고 만든 작품으로

    지금은 트빌리시의 명물이 되었다.


    앞에 연결되어 보이는 건물은 가브리아제 레스토랑~!



    시계탑 아래쪽에는 색색의 타일들로 우편엽서를 만들어

    각자의 모양과 색감으로 전시된 아기자기함이 엿보인다.



    돌틈 사이로 하이힐 굽이 빠지는 것 조심하라는

    이 경고의 그림조차도 작품에 포함된다고 하니...ㅎㅎㅎ

    이 작가의 섬세함이 동화적이고도 놀랍다.


    우리는 다시 트빌리시의 광장 안쪽으로 연결된

    끝없이 길고 미로같은, 골목길 구경으로 들어선다.



    채식 식당이라고 하던, 한 식당의 내부는

    페르시안 문양으로 온통 장식되어

    음식을 먹는 사람보다는

    내부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나도 그 중의 한 사람~! ㅋㅋㅋ



    벽에 그림을 걸어놓고 판매하던 길거리 화가들도 있었고~~



    사이프러스가 시원하게 뻗어있던 건물은 교회 같았다.



    곳곳에 이렇게 생긴 쓰레기통도 배치되어 있었고,



    포도나무로 그늘을 드리워둔 카페 거리는 시원하게 느껴졌고,



    길가로 탁자를 배치한 레스토랑 거리는

    밤이 되면 아주 복잡하고 시끄러울 것 같았다는...ㅋㅋ


    오늘도 어김없이 날씨는 청명하고

    하늘에 티 한 점 없다.



    햇살은 원시적이라

    햇살 아래 나서면 볕이 따갑고

    그늘에만 들어서면 금방 시원해진다

    도시는 역시 덥고 공해가 심하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이들이 흡연을 하는 거리는

    지나가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나와서 만난,

    트빌리시에서 제일 맛나다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모두 줄을 서서, 또 하나씩 골라 먹는 재미를 누리며

    잠시 땀을 식혔다.



    나는 바닐라,

    옆지기는 무슨 베리 종류였는데~?

    제일 잘 팔린다고 추천했던 메뉴~!



    바로 옆가게가 인형 가게였는데,

    이상스레 조지아의 인형들은

    유럽식의 예쁜 인형이 아니라

    슬픈 얼굴의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인형들을 팔았다~~ㅎㅎ



    카페트 파는 가게도 있었고~~



    휠체어에 앉아 연주를 하던 거리의 악사도 만나고~~



    6차례에 걸친 보수공사로

    외벽이 거의 모자이크 수준인 시원교회~!



    들어가본다~~

    늘 입구에서 초 한 자루를 사서

    조지아의 평화를 위해 밝혀주고~^^



    대주교님만 앉을 수 있다는 교의가 있었고,

    교회에 너무 많이 들어갔던 관계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바로 곁에 자리한 대상들의 숙소였던 캬라반사라이~!

    지금은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만 즐비하다



    오래되어 보이는 이 전차는

    영화촬영용으로 제작되었다는데,

    지금은 장식용으로 남았다.



    큰 도로에는 쓰레기 수거차가 수시로 지나가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쓰레기들을 쉴 새 없이 치웠다.



    나리칼라성 아래에 위치하는, 이 특이한 구조물은 유황온천이다.

    아직도 온천물은 솟아나고 있고

    이 온천수로 목욕을 하면 피부병에 좋다고는 하는데

    한 시간 이상을 넘기지는 말라고 한다.


    '트빌리'라는 뜻은 '따뜻한'이다.

    5세기에 조지아의 카트리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화살에 맞은 꿩을 사냥 매가 물어왔는데

    유황온천에 빠진 꿩이 익어있었다고 한다.

    트빌리시에 유황온천이 있고

    유황온천 입구에 꿩을 잡은 매의 동상이 있는 이유다~ㅎ


    5세기 후반에 고르가살리 왕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수도를 므츠헤타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트빌리시'라고 지었다.




    온천수를 끼고 돌아서면

    오늘 점심을 예약한 레스토랑이 있다

    <트빌리시 팰리스>란 호텔의 레스토랑인데

    트빌리시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라고...



    메뉴는 쇠고기 스테이크

    닭고기 카레

    스파게티와 샐러드...

    역시 푸짐했고, 맛도 아주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올려다 본 풍경은

    나리칼라성이 거의 완벽하게 보였고,



    내려다 본 시가지 풍경은

    바로 곁의 유황온천지와 야외 카페

    그리고 왼쪽에 자리하는, 개천 끄트머리에 있는 타일 붙인 건물이

    트빌리시에서 제일 유명한 유황온천 목욕탕~!



    심수봉이 개사하여 부른 <백만 송이 장미>의 실제 주인공

    '니콜라스 필로스 마니'의 동상

    흔히 '니깔라'상이라고 부른다.


    화가였던 그가 프랑스의 여배우 마가리따를 사랑하여

    백만 송이의 장미를 바치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던 그를 버리고

    그녀는 떠나버리고...

    슬픔과 절망에 빠진 필로스 마니를 조형물로 만든 작품이다.


    백만 송이 장미의 원작은 러시아 노래다.

    러시아의 국민 가수 '알라 뿌가쵸바'가 불러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유명해졌고

    이 부드럽고 달콤한 노래를 심수봉이 개사하여 불렀던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인기를 누렸다.



    니깔라상 주변에는 장미를 쭉 둘러가며 심어두었는데

    아름답다기 보다는 어쩐지 슬픈 느낌이 강하다~~ㅠㅠ


    꽃을 좋아했던 마가리따를 위해

    가난한 화가는 그의 집과 그림과 모든 재산을 팔아

    백만 송이의 꽃을 사다 바쳤다는데...


    필로스 마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마가리따의 그림인데,

    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특별한 미인도 아니고,

    그저 오동통한 여인에 불과해보이건만~~ㅎㅎㅎ


    하기사 당나라 현종의 사랑을 독차지한 양귀비도

    그저 오동통한 동양의 여인이지 않았던가~!



    거리의 마작판 같은 것도 보였고~~



    아까 레스토랑에서 내려다 본 유황온천 목욕탕이다.

    설명을 듣지 않고 보면

    고급스런 타일을 붙인 건물이

    꼭 이슬람 사원처럼 보인다.


    한 시간의 유황온천을 즐기며

    이열치열하고 싶었지만,

    여자들은 목욕을 하려면, 도구들이 필요해서리...ㅋㅋ


    푸쉬킨이 여기 와서 목욕을 하고는

    내 생애 이런 유황온천은 해 본 적이 없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곳이란다.



    커다란 앵무새를 팔에 얹고 지나가는 남자도 보면서,



    우리는 무트커버리강을 가로지르는 자유의 다리로 왔다.

    1227년 몽골의 침략으로, 10만 명이 순교한 것을 추모하여 만들었다.



    10만 순교자의 다리 안내판~!


    몽골군이 침략하여,

    이 다리를 건넌 다음,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준다고 하였으나

    모두들 거부하여 10만 명이 몰살당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여기서 잠시, 몽골군이 짧은 시간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면

    첫째,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

    둘째, 육포를 끓여 식량으로 해결했기에, 대량의 식량이 필요하지 않았고

    셋째, 항복하지 않으면, 아이와 여자들까지도 몰살시키는 잔인함 때문이었다.



    # 트빌리시 시티 투어는 여기에서 1부를 마치고

    2부로 연결합니다.

    사진이 50장 이상은 첨부되지 않아

    한번에 올리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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