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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성지순례기 9 -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여행 이야기(해외) 2025. 2. 20. 11:29
1월 19일~!
오늘은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를 향해 떠나는 날,
인도 국경을 넘어 네팔로 가야하는 여정이라
대규모 인원이 국경 통과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것을 예상,
새벽 1시 30분 기상, 2시 30분 출발했다.
버스에서 다들 다시 단잠에 빠졌다가
5시에 일어나 예불 올리고, 경전독송하고,
6시경에 국경마을에 도착했다.
버스는 버스들대로 모여, 출국심사를 기다리고,
순례자들은 우선적으로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1인 10루피씩 내는 유료 화장실인데
그런대로 깨끗했다.
인도의 새벽 안개는 적응이 잘 안 된다.
눅눅하게 추운 습기가 몸안으로 감겨드는 느낌이
얼마나 싫었는지, 버스에서 내리기 싫었지만,
일차로 여권확인 절차를 천막 안에서 거치면
차량 순서대로 출국심사 대기하러 간다.
인도의 출입국 심사관저를 신축하느라
지금은 뭔가 어수선한 상태다.
인도 출국이 끝나면,
다시 네팔 입국심사가 시작된다.
여권 확인 절차를 마치고 나오면,
차례로 줄을 서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데
원래는 새벽 시간이라 출입국 심사 담당이 한 명 근무한단다.
해서, 미리 대사관이랑 인도와 네팔 정부에 협조요청을 한 상태라
인도 영사관에서 절차를 도와주러 인원이 파견되고
인도랑 네팔 대사관에서도 인원을 충원시켜
6시간 예상했던 국경통과 시간이
거의 3시간 만에 모두 완료되었다.
우리 10호차는 앞쪽에 배당이 되어
일찍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네팔 쪽 국경마을에서, 다른 일행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춥고, 배도 고프고, 시간도 많이 남아서
길거리에 파는 짜이랑 튀긴 빵을 사서 나눠 먹었다.
짜이를 한번에 대량 주문하다보니
생강을 갈아서 넣어야는데,
흙 묻은 생강을 씻지도 않고 뚝 떼어서 넣는다
산적처럼 생긴 저 아저씨에게 내가
'생강 씻어서 넣으세요' 했더니
그냥 씨~익~~ 웃고 넘어간다
짜이컵 바닥에 흙이 갈앉아 있었다~~ㅎㅎㅎ
버스 타고 다시 30분 이동, 람그람의 진신사리탑에 도착했다.
우리 순례 일정 중에 총 세 군데의 진신사리탑을 가는데
앞에 바이샬리에서 한번 갔었고,
이 곳이 두번째, 마지막은 상카시아 석가족 마을에 있다.
람그람 진신사리탑 앞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8등분으로 나눈 부처님의 유골 중 하나를
꼴리야족(마야부인 친정쪽)이 가져와서 만든 진신사리탑이다.
람그람의 사리탑은 용왕이 나타나
'이 곳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석가족 여인들이
기도를 올리는 곳이니, 손을 댈 수 없다'고 해서
탑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고 한다.
가끔 도굴꾼들이 와서 탑에 손을 대면,
마른 하늘에 벼락천둥이 치거나, 즉사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스란히 전해오고 있지만,
상부가 허물어져 무덤처럼 남았고
기단부도 허물어져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긴 어려워도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진신사리탑이다.
앞의 나무에 걸린 하얀 천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신성함을 상징해서 걸어놓은 것인데
우리나라의 성황당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스님의 설명과 법문을 듣고,
예불과 탑돌이까지 마치고,
조금 늦은 듯한 아침 도시락을 펼쳤다.
원래는 숙소에 들어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우리가 진신사리탑에서 행사를 진행하는동안
버스기사님과 조수들이 아침을 짓고 있다고 했다.
오랜 기간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버스기사와 조수들은
잠은 버스에서 자고, 밥을 직접 만들어 먹고는 했는데
시간이 지체되니, 여기서 이미 식사준비를 시작했다고 해서
좀 춥긴 했지만, 우리도 여기서 아침을 먹었다.
안개에 젖어, 떨며 먹었던 아침이었지만
식어버린 밥도 꿀맛이었고,
나는 집에서 가지고간 반찬을 먹으며 다시 일어서는 힘이 생겼다.
순례 일주일을 넘기면서, 먼지와 공해로
목이 아프고 편도가 부어올라 침 삼키기도 어려웠는데
여기저기서 건네주는 약을 얻어먹고 많이 갈앉고 있었다.
네팔로 넘어오니, 확실히 공기가 다르다
훨씬 먼지도 덜하고, 공해는 거의 없다.
돌아나오는 길에, 쓰레기통과 우물이 있고
길이나 유적지 부근이 인도와는 비교가 안 되게 깨끗했다.
모처럼 양치도 한번 하고, 손도 씻고
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나왔다.
문앞에 줄지어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스님은 과자와 사탕을 나눠주고 계셨다.
버스 타고 다시 달려가는 길,
안개 자욱한 로히니 강을 차창 밖으로 지나면서
다시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로히니 강을 사이에 두고
부처님의 친가인 사끼야족(석가족)과
부처님의 외가인 꼴리야족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가뭄이 심하게 들어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상황이라
서로 자신의 밭에 물을 대겠다고 두 부족이 다투다가
싸움이 심해져 피를 흘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부처님이 오셔서 강의 가운데 서서 물었다.
"여러분~! 물이 귀합니까? 피가 귀합니까?"
"피가 귀합니다."
"그런데 왜 물 때문에 피를 흘리려고 하십니까?"
이후로 두 부족은 서로 양보해가며 가뭄을 극복했다고 한다.
버스로 1시간 이동 끝에,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앞에 내렸다.
룸비니 정문 앞,
검색대를 통과해서 들어가면,
마야데비 템플이 있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서 가야한다.
룸비니 동산은 숲이 아름다웠고,
한겨울에도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한국에선 한여름에 피는 자귀꽃이 피고 있었고
보랏빛 털복숭이꽃 아게라텀도 피었고,
부겐벨리아 비슷한 빨강 꽃이랑
달맞이꽃 닮은 노랑 꽃들이
색색이 선명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연못에는 수련도 몇 송이
미소처럼 번지고 있었고,
공기가 깨끗하고 숨쉬기가 편했다.
마야데비 템플 앞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면에 아쇼카왕의 석주가 보이는데
이 석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정글 속에 묻혔던
룸비니를 찾아내어 지금의 상태로 복원하기에 이른다.
7세기 초, 당나라 현장스님이 이 곳에 왔을 때
이미 폐허가 되어 정글 속에 묻혀 있었고
강도들이 득실거려 순례객들이 찾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1966년 우탄트 UN사무총장이 방문한 뒤
'룸비니 개발 위원회'가 결성되어
성지로 개발에 착수했는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삼부토건이 공사를 맡아 진행했다고 한다.
예불부터 올리고,
스님의 설명과 설법을 듣고
경전 독송하고, 명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마야부인은 아기 출산일이 가까워지자
친정인 '데바다하 성'으로 아기를 낳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카필라성과 친정 중간쯤인 룸비니 동산에서 잠시 쉬다가
산기를 느껴, 아소카 나뭇가지를 잡고 옆구리로 아기를 낳았다
아기가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은
왕족인 크샤트리아 출신이라는 상징이고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육도윤회를 벗어나, 해탈할 사람이란 뜻이다.
어머니 옆구리에서 태어난 아기는
일곱 걸음을 걸은 뒤에 하늘과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인지'
(하늘 위와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고통 속에 헤매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뒤, 평생 추구했던 길이었다.
마야부인은 길에서 아기를 낳은 까닭인지
산후병을 얻어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나고
아기의 이모인 마하 프라자파티가 정반왕과 결혼을 하여
싯타르타 태자를 맡아 양육하게 된다.
그녀는 뒷날, 불교 교단에 출가한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싯타르타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죽음과 직면하고
평생을 두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고, 체험하고,
설법하게 된 그 숙명적인 만남이 탄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길에서 태어난 싯타르타는
스물아홉에 생사고뇌를 극복하기 위해 길을 찾아 출가한다.
그리고 온갖 고행 끝에 서른 다섯에 그 길을 깨닫는다.
그 후 45년 세월을 길을 따라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탈과 열반의 길을 가르치다가
여든 살에 또한 그 중생교화의 길에서 입멸하였다.
그래서 불교를 어떤 학자들은 '길(求道)의 종교'라고 한다
특히 선(禪)불교는 포교의 종교라기 보다는 구도의 종교에 가깝다
부처님 욕불의식도 한 사람씩 차례로 해보고,
마야데비 템플을 전체로 한 바퀴씩 돌고,
싯타르타 연못까지 두루 한 바퀴 돌다가,
(마야부인이 아기를 낳아 목욕시켰다는)
거대한 보리수 아래에서, 여법하게 수행중인
동남아 스님들도 보면서,
오늘 마지막 여정이라 여유롭게 참배를 진행했다.
마야데비 템플 안에는
오른쪽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벽쪽에
너무 마모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부조가 있는데
마야부인이 나뭇가지를 잡고 있고,
아기는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해서 연꽃대 위에 서서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되어있다.
내부 촬영 금지라고 해서, 살짝 한 장만 찍었는데
자세한 촬영은 불가능했다.
마야데비 템플 앞에서 도반이랑 사진 한 장 찍고,
천천히 정원 감상하며 돌아나오는 길
원숭이 무리들이 우리를 구경하는 지
우리가 원숭이를 구경하는 지 모를 정도로
원숭이 가족들이 많이 몰려 다녔다.
떠도는 개들이 여기도 엄청나게 많은데
특별히 나눠줄 것이 없었다.
오늘 숙소는 스리랑카 룸비니 게스트 하우스
겉모양은 깔끔하게 보였고,
숙소 내부도 그런대로 깔끔해보였지만,
담요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서
모두 걷어내고 침낭 속에서 잠을 청했다.
밤과 새벽이면 그렇게 심한 안개비가 내리니
언제 세탁해서 말릴 새가 있겠나 싶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건조기를 들이던지, 뭔 조치를 해야될 것 같아 보였다.
내일도 새벽 일찍 기상해서
안나푸르나 설산의 일출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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