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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성지순례기 3 - '가야'를 거쳐 '전정각산'으로
    여행 이야기(해외) 2025. 2. 3. 20:03

    1월 13일, 새벽 4시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가야'를 거쳐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을 하신 '전정각산'까지

    거의 250km 거리를 달려가는 날이라

    도시가 복잡해지기 전에 출발한다.

     

    앞에 보이는 것이 내가 끌고다닌 짐이다

    캐리어, 손가방, 침낭, 그리고 등에 맨 배낭,

    이걸 다 챙겨 나오려면 거의 1시간 30분 전에 기상을 해야한다.

     

    돌아와서도 한동안 나는 가방을 잃어버리거나

    지갑을 잃어버려 허둥거리는 꿈을 꾸곤했다.

    그만큼 긴장하면서 다녔다는 의미이리라...

     

    도로 끝에 주차하고 있는 버스까지

    제법 먼 길을 캐리어 끌고 온다고 땀을 흘렸다.

    우리 조의 짐을 싣기위해 기다리는 이 분은

    머리를 보면 알겠지만, 현역 군인이다.

     

    원사 제대 6개월을 앞두고

    휴가를 얻어 힘든 순례길에 동참을 했다.

    아프간 전에도 참전했던, 특전사 출신으로

    일당백의 전사인 이 분도, 6일째 되던 날

    입술이 터져 부풀어 오를 정도로 순례는 힘든 여정이었다.

     

    버스 안에서 새벽 예불을 올리고, 모두 다시 잠에 빠졌다.

     

    버스는 대략 2시간마다 쉬어간다.

    이때는 이유없이 모두 내려서 들판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중간에 차 세워달라는 말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는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화장실이 불편하다

    인도 사람들에게 인도는 화장실이 없어서 문제라고 하면

    '인도는 모든 곳이 화장실이다'라고 대답한다

     

    버스는 5시간을 달려, '가야'에 도착했다.

    '가야'는 부처님이 사르나트에서 다섯 비구와 

    야사 비구... 등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먼 길을 걸어와,

    우루벨라 가섭 등 1,000명의 수행자들에게 깨달음을 얻게 만들어

    천 명이 넘는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는 중요한 곳이다.

     

    마을길을 걸어 산꼭대기로 올라가면 

    부처님 발자국이 찍힌 곳에 사원이 하나 만들어져 있다.

    거기에 올라가 아침 도시락을 먹기로 한다.

     

    노점 채소가게도 지나고

    이쁘게 꾸민 마차도 보면서 지나간다.

     

    소똥을 연료로 쓰려고 말리는 모습인데

    주로 소똥을 말려 쓰는 사람들은 불가촉천민들이다.

     

    작은 시장 같은 곳을 지나가면,

     

    산꼭대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이 나온다.

     

    인도에는 소나 말이나 개들이

    한결같이 앙상하게 말랐다.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개들도 거의 집에서 키우지 않고

    야생으로 그냥 떠돌아다니는 개들이다.

    그러나 사납지는 않았다.

    먹는 것을 던져주면,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와 조용하게 받아 먹는다.

     

    가야의 시사 스투파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부처님 발자국이 남은 곳이라는 설명과

    달라이라마 존자가 다녀가신 곳이라고 쓰여있다.

     

    부처님이 출가해서 평생을 걸어다니셨으니

    북부 인도의 어느 곳에 발자국이 없는 곳이 있으랴~!

    이런 것은 중요하지가 않고, 정말 중요한 것은

     

    시사 스투파가 있는 이 자리 주변

    사람 천여 명이 앉기에 충분한 여기에서

    부처님이 '불의 설법'을 하셨다는 것이다

     

    가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뿌연 매연으로 뒤덮힌 도시~!

     

    올라오는 순서대로 앉아 아침 도시락을 먹고,

     

    멀찍히 떨어져 계신 스님의 설명과 설법은

    수신기로 들으면서, 경전 독송을 했다.

     

    우루벨라 가섭과 그의 제자 500명

    나디 가섭과 그의 제자 300명

    가야 가섭과 그의 제자 200명을 모두 교화하여 이끌고

    이 곳 가야에 와서 하신 설법은 '불의 설법'으로 유명하다

     

    우루벨라를 포함한 이 모든 수행자들은

    불을 섬기는 일종의 배화교 신자들이었다.

    나이 80 가까웠던 우루벨라 가섭은

    당시에 부근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수행자였고

    왕사성의 빔비사라왕조차 그를 존경해마지 않았다.

     

    그런 그가 부처님과의 30여회에 걸친 시험 끝에

    젊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들이 숭배했던 불을 담았던 도구들을 모두 강물에 버렸다.

     

    그리고 부처님을 따라 가야의 이 곳, 가야산이라고도 하고

    멀리서 보면, 코끼리 머리 모양이라고 '상두산'이라고도 부르는 곳까지 왔다.

    부처님은 천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섬기는 불을 끄고 버렸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 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불을 꺼야한다'는

    불의 설법을 하신 곳이 바로 여기다

     

    보시함에 보시를 하고

    바깥에 선 채로 삼배를 올리고,

     

    끝없는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맨발에 흙투성이 아이들이 달라붙어

    돈이랑 캔디를 달라고 아주 극성적으로 매달린다.

     

    다시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달려가

    수자타 아카데미 입구에 도착해 걸어 들어갔다.

     

    가야의 둥게스와리에 있는 '수자타 아카데미'는

    34년 전, 법륜스님이 불가촉천민 마을에 만든 학교다

     

    34년 전, 법륜스님이 처음 부처님이 6년간 고행을 했던

    전정각산을 찾아갔을 때, 입구부터 산정상까지 수백 명의 아이들이

    맨발에 흙투성이가 되어 구걸을 하고 있었다.

    평일인데 왜 학교에 가지 않고 구걸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여기는 학교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을 설득하여, 땅을 내어주면

    학교를 함께 지을 수 있다고 하여

    10명의 마을사람들로부터 각각 40평 정도씩의 불모지를 기부받았다

    그리고 정토회에서 자재를 공급하고

    마을사람들과 스님이 함께 일을 해서 교실 4개를 짓기 시작했다.

    교실이 지어지는 동안, 마을의 아이들 80명 정도를 모아

    천막을 치고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글을 아는 청년이 딱 2명이 있어

    아이들을 40명씩 나누어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실이 완성될 무렵이 되니, 아이들이 150명으로 늘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주었더니, 근처의 아이들이 모두

    밥을 얻어먹으려고 몰려 들었던 것이다.

     

    2년에 걸쳐 교실이 완성되기 무섭게

    다시 증축을 시작하고, 학교 이름은 '수자타 아카데미'라고 지었다.

    둥게스와리에서 6년간 고행을 하고,

    뼈가죽만 남은 부처님이 마을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쓰러지자, '수자타'라는 아가씨가

    유미죽을 끓여 부처님을 회복시킨 2,600년 전의 은혜를

    스님은 여기에서 기억하고 기리고 싶었던 것이다.

     

    '둥게스와리'의 뜻은 '시타림'이다

    '시체를 버리는 숲'이란 뜻이다

    불가촉천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장례비가 없어

    그냥 가까운 산이나 숲에 버렸는데

    시체가 버려지고 썪어가는 숲 근처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어서

    부처님은 수행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정토회에서 인도 성지순례를 올 때는

    수자타 아카데미의 개교기념일과 겹친다

    개교기념행사는 온 마을의 축제로 이어져

    아이들은 학교를 순례객들에게 내어주고

    3일간 축제를 즐기면서 쉰다.

     

    교문 부근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순례객들의 환영행사를 구경한다.

     

    학생들은 교문 앞에서 악기를 두드리며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고,

    모든 순례객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환영했다.

     

    내게 꽃목걸이 걸어준 소년과 함께 사진 한 장~!

     

    1학년 꽃동이가 코끼리를 타고

    순례객들에게 꽃을 뿌려주는 교문을 들어서면,

     

    아이들이 한 달 전부터 축제를 준비했다는

    아주 깨끗한 건물들 사이로 들어서게 된다.

    학교는 아직도 증축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이렇게 되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지금은 주변 16개 마을의 아이들 천 명 정도가 다니는 학교가 되었고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운영되고 있다

    운영방식은 중학생이 되면 유치원 아이들을 맡아서 가르치고

    고등학생은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대학생이 되면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있으며

    모든 학생들이 하나의 봉사를 맡아야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정토회의 운영방침은 인건비를 지출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봉사의 형식으로 움직이며

    대신 학교에 필요한 모든 학용품과 교복, 급식, 교재...

    등은 무료로 지원한다.

     

    여기는 학교 한 쪽에 자리하는 지바카 병원이다

    근처의 16개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유일한 병원

    부처님의 주치의였던 '지바카' 이름을 따서 '지바카 병원'이라 지었다.

     

    내부는 그리 넓진 않지만,

    인도의사 한 분이 상주하고

    한국의 자원봉사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온다고 한다.

     

    법당 참배한 다음,

    20년 전에 여기로 건축봉사를 왔다가

    무장괴한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난

    설성봉 거사님의 기념탑 앞에 모두 참배를 했다.

     

    수자타 아카데미 31년간의 흔적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학교를 한 바퀴 돌아 운동장으로 나가면

    고학년 소녀들이 짜이와 비스킷을 준비하여 대접하고 있었다.

    목이 말랐던 나는 짜이 두 잔에 비스킷 두 개를 먹고,

     

    환영식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님이 앉으시자 환영식이 시작되었다.

     

    전교생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고,

    순례단들도 달려나가 함께 춤을 추었다.

    운동장 가득 매달아놓은 반짝이는

    아이들이 한달내내 만들어 일일이 손으로 걸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 가장자리로 나가고

    가운데 빈자리가 무대가 되었다.

     

    소녀들의 공연이 수준급이었고

    비보이 소년들의 공연도 아주 활기가 넘쳤다

    아이들의 표정은 너무 밝고, 

    행동은 자유로움이 넘쳐 보였다.

     

    이 학교를 세우지 않았다면

    이 수많은 아이들은 여전히

    맨발에 흙투성이 옷을 입고 구걸을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교육의 위대함 앞에 나는 잠시 울컥했다.

     

    잠시의 환영식을 접고, 우리는 다시 오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나선다

    모레 수자타 아카데미 개교 31주년 정식 행사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순례단을 위해 모든 교실과 특별실을 깨끗하게 청소해 비워두었고

    우리는 대부분 한 교실에 10명씩 배정되었다.

    배정된 교실에는 매트가 깔려 있어

    각자 매트 앞에 캐리어와 짐을 내려놓고,

     

    순례단을 부처님의 6년간 고행을 하셨던

    전정각산으로 올라갔다.

    중간에 사나운 원숭이들이 많이 있다고

    절대로 먹을 것을 주지말라는 경고가 있었다.

     

    '전정각산'이란 부처님이 '정각(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머물렀던 산이란 뜻이다.

    실제로 여기에서의 6년간 고행이 없었다면

    부처님은 보드가야에서 49일만에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순례단들은 전정각산은 오지 않고

    보드가야로만 몰려가 순례를 하고는 한다.

     

    스님은 전정각산에서 부처님이 수행하셨던 곳을 설명하고

    겨울에 부처님이 수행했던 동굴 - 유영굴을 참배하라고 하셨다.

    그 외에도 부처님의 명상터와 부처님이 물을 마셨다는 샘터도 돌아봐야는데

    오늘 저녁 공양 당번이 우리 10호차 사람들이라

    우리는 유영굴만 참배하고 빨리 내려가기로 한다.

     

    오른쪽 사진 산쪽으로 하얀 건물이 몇 개 보이는 저 곳에 유영굴이 있다.

    지금은 티벳의 스님들이 수행처를 지어놓고 계신다고 한다.

     

    걸어서 올라가기 어려운 연로한 분들은

    중국의 가마꾼 비슷한 분들이 메고가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가는 모습도 멀리 보였다.

     

    하얀 건물이 있는 유영굴까지는 다시 한참을 걸어 올랐고

    굴은 너무 좁아서, 한번에 세 사람씩만 참배했다.

     

    유영굴 옆에 부처님 고행상이 앉아있다.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인데

    실제로 부처님은 전정각산에서

    하루에 야생 대추 몇 개씩만 먹고 수행을 했다고 하니

    6년을 거치면 이런 모습이 될 수 밖에...ㅠ

     

    10호차 사람들만 서둘러 수자타 아카데미로 내려왔다.

     

    수자타 아카데미에 머무는 사흘동안은

    여기서 아침과 저녁 공양을 제공했기에

    밥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고, 감사하게 받아 먹었다.

     

    오늘 준비한 저녁 공양은, 밥과 달(인도식 카레국)

    그리고 새콤하게 잘 익은 국물김치와 사과 하나씩이다

    소박한 식사였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저녁 식사후에 강당에 해당하는 '쁘락보디홀'에 모여

    저녁 예불을 마치고,

    수자타 아카데미의 31년간 변화발전 과정을 시청하고,

     

    스님 법문을 마지막으로

    긴 하루의 일정을 마쳤다.

     

    내일은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보드가야까지 걸어가는 고된 행군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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